일본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인 세르기 코르슨스키 대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논란입니다.
주일 우크라니아 대사관은 지난 3일 공식 X(옛 트위터) 계정에 “세르기 코르슨스키 대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잃은 분들을 추모했다”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사진을 공개했는데요.
공개된 사진 속 코르슨스키 대사는 야스쿠니 신사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아 참배 전 정화수에 손을 씻고, 방명록에 서명했습니다.
일본 매체들은 코르슨스키 대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소식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X 등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참배 소식이 빠르게 확산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특히, 현재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일본 제국 군국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한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도쿄 중심부의 황궁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원래 일본의 신사는 일본 황실 조상이나, 국가에 공로가 큰 인물 또는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한 사당입니다. 신사에는 이들을 위한 각각의 위패는 없고 이들을 상징하는 거울과 검 및 이름이 기재된 명부를 봉인해 놓고 제사를 지내는데요. 일본에는 이런 신사가 8만개 넘게 있습니다.
메이지 유신 직후인 1869년 건립된 야스쿠니 신사는 창건 당시의 명칭은 쇼콘지 즉, 초혼사였습니다. 초혼사란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 위로하는 신사라는 뜻입니다.
이때 ‘죽은 자’란 천황을 위해 죽은 자를 가리키는데요.
메이지 유신 이전의 일본은 막부가 통치했습니다. 당시 천황은 이름뿐인 천황이었는데요.
메이지 천황이 이름뿐인 천황에서 실질적인 통치자로 거듭나려고 하자 막부를 따르던 지방 세력과의 내전이 발생했고, 메이지 천황은 막부 세력을 물리치고 천황권을 확립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내전 과정에서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은 병사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신사가 초혼사입니다. 초혼사는 황실이 나서서 참배하는 신사로 특별히 여겨졌는데요.
이후 1879년에 ‘야스쿠니’로 이름이 변경됩니다. 야스쿠니는 우리말로 정국(靖國), ‘평화로운 나라를 만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그리고 이름과 다르게 현대의 야스쿠니 신사는 동북아 지역에선 항상 논란의 대상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하와이 진주만 기습 공격을 명령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이 ‘합사명부’에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약 250만명의 합사명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A급 전범은 ‘국제 조약을 위반해 침략 전쟁을 기획·시작·수행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참고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연합국의 국제 군사 재판에서는 독일과 일본의 전쟁 범죄자를 A급·B급·C급으로 분류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A급 전범 14명 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태평양 전쟁을 주도했던 전 총리 도조 히데키, 조선 총독을 지낸 고이소 구니아키, 만주사변 주모자 이타가키 세이시로, 난징 대학살의 주범 히로타 고키 등이 있습니다.
이런 곳에 참배한다는 것은 일본 제국에 큰 피해를 입었던 한국과 중국, 그리고 태평양 전쟁에 휘말렸던 많은 국가에 매우 불쾌한 일입니다.
또한 참배하는 것 자체가 일본 제국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 등 침략 전쟁을 미화하는 행위이기에 이번 코르슨스키 대사의 참배는 매우 모순적이면서도,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와 일본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희생한 분들을 애도했다’라는 글을 남기면서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사실 코르슨스키 대사의 ‘친일파적인 행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친일 인사로 평가되는 과거에도 여러 만행을 저지른 바 있는데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전쟁 초기인 2022년 4월 SNS를 통해 항전 의지를 드러내는 선전 영상을 올린 바 있습니다. 해당 영상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러시아의 이념을 ‘러시즘(러시아+파시즘)’으로 명명하고 이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요. 여기에 제2차 세계 대전 추축국 지도자인 ‘히로히토 일왕’, 아돌프 히틀러, 베니토 무솔리니가 파시즘을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했습니다.
히로히토 일왕의 등장에 일본 내에서 거센 반발이 터져 나왔고, 당시 코르슨스키 대사는 “일왕은 전쟁 발발과 파시스트와는 무관하다. 이는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는 망언을 하며 영상 삭제를 촉구했습니다.
결국 우크라이나 정부는 일왕 얼굴을 삭제한 수정 영상을 올리며 “이전 버전의 영상에서 실수한 것과 관련해 진심으로 사과한다. 우리는 우호적인 일본 사람들을 불쾌하게 할 의도가 없었다”라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코르슨스키 대사는 또 혐한 게시물을 리트윗하기도 했습니다.
2022년 4월 12일 개인 트위터 계정을 통해 ‘반박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기정사실화된다. 그동안 한국으로부터 피해를 받은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러시아는 한국과 비슷하기 때문에 발 빠르게 반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라고 적힌 글을 리트윗한 건데요.
그가 리트윗한 계정은 혐한 관련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올린 계정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해 “거짓말하고 약속도 지키지 않고, 남의 물건을 훔치더라도 정당화할 놈에게 의연하게 대응하는 일을 우경화라고 하지 않는다”라는 비판의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한편, 주일 우크라이나 대사관 공식 X 계정에 올라왔던 참배 사진과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입니다. 비판이 쏟아지자 부랴부랴 삭제한 것으로 보입니다.